유토피아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벽한 사회를 말하는데, 실제 의미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말한다. 토머스 모어가 1515년 쓴 공상사회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인간이 꿈꾸고 원하는 완벽한 이상주의적 사회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콘크리트는 공동주택 아파트를 가리킨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에서 영화 제목처럼 유토피아가 실현될 수 있을까.
콘크리트 유토피아 감독 엄태화 출연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김도윤, 박지후 개봉 2023.08.09.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감독은 엄태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지만 2016년 강동원 주연의 영화 ‘숨겨진 시간’을 연출한 감독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가 단순히 주거의 대상이 아닌 욕망의 대상임을 매개로 삶의 인간 욕망을 스크린에 구현한 작품이다. 게다가 단순히 인간 욕망의 밑바닥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직간접적으로 녹아 있는 이데올로기, 정치 문제까지 일부 담고 있다.
대강의 줄거리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모든 건물이 무너지는 재앙적인 상황에서 아파트 한 채만 살아남는다.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 어쩌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축복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황궁 아파트 거주자들은 유일하게 건재한 자신들의 둥지를 폐쇄적인 공동체로 구성해 다른 지역에서 밀려드는 외부인들을 철저히 차단한다. 외부인을 바퀴벌레라고 명명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한다. 아파트 주민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구성하고, 주민대표를 선출하며, 대표로 선출된 영탁(이병헌)을 중심으로 이른바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역할을 배분하며, 배분된 역할의 중요도에 따라 외부에서 획득한 음식도 차별 배분한다. 철저히 자본주의 시스템에 기반해 아파트 공동체를 운영하는 조직위는 주민 대표 영탁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영화를 보는 시선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많은 은유가 포함돼 있다. 아파트가 인간 욕망의 발화점임을 표현하고 아파트가 주거 이상의 욕망의 대상임을 시종일관 유지한다.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의 이름은 황궁, 그 옆에 있던 무너진 아파트의 이름은 ‘팰리스’, 같은 뜻이지만 한글과 영어의 차이를 대비시켜 황궁아파트와 팰리스아파트의 가치 차이, 주거인의 빈부 격차를 비교한다. 이른바 ‘더 나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의식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의 대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정치인이 등장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장면도 비교적 짧은 부분이지만 허울 좋은 정치인에 대한 조롱과 혐오의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등장인물은 세 주연으로 아파트 주민대표로 선출된 영탁 역 이병헌, 영탁 아래 행동대장을 맡고 있는 민성 역의 박서준, 그리고 민성의 아내 명화 역의 박보영은 정치 부재 상황에서 이념적 대결을 통해 현실을 대변한다.
이 영화는 전체주의, 집단이기주의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재앙으로 폐허가 된 도시, 디스토피아적 세계에서 인간이 취하는 행동양식이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모습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현실 세계에서 다르게 발현될 뿐 결코 이질감을 느낄 만큼 기괴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외치며 주민 외에는 아무도 아파트에 거주할 수 없다는 규정 아래 모든 주민은 주인공 영탁(이병헌)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자신이 소유한 아파트에 타인을 살게 했다는 이유로 규정을 어긴 주민을 인민재판 형식으로 다른 아파트 주민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큰 소리로 사과의 표현을 하게 하는 모습에서 전체주의, 집단주의의 민낯을 보게 된다.
주민 대표 영탁과 대립각을 세우는 민성의 아내 명주는 인간이 가진 기본 상식, 즉 인간애라든가 배려를 베풀며 인간의 윤리 도덕 규범에 충실하려 하지만 자본에 탐닉한 절대 주민 앞에서 무력화된다.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은 조지 오웰의 1984를 소환시킨다. 그리고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주장한 전체주의, 국가 전복 세력에 대한 그의 언행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전체주의는 북한 등 사회주의 체제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성을 추구하는 민주공화국 사회조차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집단과 개인을 탄압하는 현 정부에서 전체주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적인 재미는 있는가
영화의 시선이 오락물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함의를 담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재미를 담고 있다. 비록 예측 가능한 서사의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몰입감을 유도하기에 충분한 디테일적 흥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누구나 약육강식 동물 세계에서 동물처럼 변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 또한 안타깝지만 흥미롭다. 연출자의 의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에 담겨 있는 다양한 메시지들은 지금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스크린에 잘 투영돼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영화적 재미와는 별개로 자기 인식 혹은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관객들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의 시선이 오락물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함의를 담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재미를 담고 있다. 비록 예측 가능한 서사의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몰입감을 유도하기에 충분한 디테일적 흥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누구나 약육강식 동물 세계에서 동물처럼 변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 또한 안타깝지만 흥미롭다. 연출자의 의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영화에 담겨 있는 다양한 메시지들은 지금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스크린에 잘 투영돼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영화적 재미와는 별개로 자기 인식 혹은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관객들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